삼육재활센터 재활소식 275호 인터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연구회장 이광원
(3kg@korea.com)



1. 현재 장애인생활시설이 갖고 있는 문제점들과 그 개선방안들에 대한 소견을 듣고 싶습니다.(5줄정도)

보건복지부 장애인복지사업지침에 나와 있는 생활시설운영의 이념에 보면, ‘시설장 및 전 직원은 생활장애인의 보호, 재활 및 사회복귀에 최대의 노력을 경주하여야 한다’고 제시되어 있습니다. 생활시설에서는 그중에서 ‘사회복귀에 대한 노력’의 일환으로, 여러 가지 사업들을 하고 있지만, 한 가지 간과되고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통제력 회복에 관한 것입니다. 생활시설에서 오랫동안 생활해온 장애인이 사회복귀하려면, 직업훈련이나 사회적응훈련 등과 같은 기술적인 접근도 필요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이 역량강화(empowerment)에 관한 접근입니다. 역량강화를 개인적 역량강화(personal empowerment)와 사회적 역량강화(social empowerment)의 두 차원으로 나눠볼 때, 시설에서 접근할 수 있는 것은 개인적 역량강화로서, 자기결정권과 선택권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원조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설에서의 일상생활에 있어서 장애인 자신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기회를 최대한 보장하고, 그 권리를 행사해보는 훈련을 증대시킴으로써, 사회복귀의 성공가능성을 높여가는 것입니다.



2. 요즘 자립생활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탈시설화 논란이 일고 있는데 우리나라 현실상 지금의 논란이 적당한 것인가 아니면 다른 의견이 있는가에 대한 소견을 부탁드립니다.(5줄정도)

탈시설화를 논하기 전에, 우리가 반드시 먼저 논의해야만할 사안이 있습니다. 그것은 중증장애인에 대한 care의 책임소재를 어디에 둘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노인과 중증장애인에 대한 장기요양보호 프로그램(long-term care program)이 확립되어, 중증장애인의 care에 대한 책임이 사회로 옮겨간 후에, 탈시설화가 논의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시설입소희망 장애인의 10%도 채 수용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로, 아직도 중증장애인의 care에 대한 책임이 대부분 개인, 혹은 가족들에게 돌아가고 있는 상태입니다. 때문에 우리가 탈시설화를 논하기 전에, 먼저 중증장애인의 care에 대한 책임을 사회가 질 것에 대해 합의해야하고, 그 합의 이후에 그 책임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에 대한 방법론으로서, ‘시설수용’인가 아니면 ‘커뮤니티 케어(community care)’인가를 논해야 할 것입니다.



3. 외국의 탈시설화 사례를 하나 말씀해주신다면.(6줄정도)

80년대 후반, 미국에서 있었던 사례입니다. 조지아주에 사는 래리 제임스 맥아피는 오토바이사고로, 34세에 인공호흡기 없이는 살 수 없는 전신마비장애인이 되었습니다. 요양원들을 전전해야하는 가치 없는 삶을 비관하여, 죽음을 선택하고자 했던 그에 대해, 법원의 판사는 수동적 안락사를 허락한다는 판결을 내림으로써, 사회적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한 그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주었습니다. 엔지니어는 목소리로 전화나 TV를 작동하는 장치를 개발해 주었고, 인근의 자립생활센터에서는 외출지원이나 정보제공을 하였으며, 컴퓨터전문가는 목소리와 헤드밴드로 작동되는 컴퓨터와 소프트웨어를 제공하였습니다. 다시 삶에 대한 의욕을 되찾은 맥아피는 이후, 조지아주 국민의료보장제도 행정관료의 사무실을 점거하며 3개월간 농성한 끝에, 중증장애인을 위한 홈케어프로그램을 이끌어낼 수 있었고, 비로소 시설을 나와 지역사회에 살면서, 24시간 계속되는 활동보조서비스를 받으며, normal한 생활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4. 자립생활에 대한 강연을 많이 다니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가장 강하게 하시는 말씀이 무엇이 있나요?(3줄정도)

여러 가지 있지만, 그중 한 가지를 꼽자면, “Planning of our own(우리들 자신의 기획으로)"입니다. DPI에서 강조하는 ”Voice of our own(우리들 자신의 목소리로)"만으론 부족합니다. 작년에 세계적인 자립생활지도자 쥬디 휴맨(Judy Heumann)을 인터뷰했을 때, 다음의 두 가지를 강조했습니다. 첫째는, 장애인 관련 정책을 결정하는 공적인 비즈니스 체계에 장애인 당사자가 들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장애인들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에서 끝나지 말고, 그에 대한 해결책까지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5. 시설과 탈시설화에 대하여 우리(생활시설)가 취하여야 할 입장과 방향에 대하여 말씀을 부탁드리자면(5줄정도)

탈시설화가 하나의 배경이 되었던 자립생활의 이념을, 생활시설에 적용한다고 하는 것을 역설(paradox)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자립생활에는 ‘상대적 자립(relative independence)’이란 개념이 있습니다. 그것은 완전한 자립생활이 곤란한 경우에, 이전보다 상대적(비교적)으로 더 자립적인 삶을 영위하는 것을 말합니다. 생활시설의 장애인들 중, 자립생활이 가능한 장애인들은 사회에 자립시킬 수 있도록 원조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한계를 가진 분들은, 시설 내에서 보다 자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자립생활패러다임의 이념을 적용하는 것입니다.



6. 마지막으로 심포지움의 주제였던 장애인생활시설의 전망과 과제라는 타이틀에 맞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5줄정도)

심포지움을 하기 이전에, 저는 모든 사람들에게 ‘왜 탈시설화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라는 물음을 던지고 싶습니다.

- 생활시설에 자립생활의 이념을 적용시키기 위해서
- 선진국의 사례에서 보듯이 탈시설화는 세계적인 추세이기 때문에

라는 답변을 주시는 사람들이 계실까요?
이런 답변은 탈시설화의 이유(reason)가 아니라 동기(motive)에 해당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흔히, 이유와 동기가 일치하지 않는 안타까운 경우들을 보게 됩니다. 탈시설화의 이유는 ‘중증장애인들이 자신의 권리를 보장 받으며, 떳떳하게 자기 삶의 주체가 되어, 이 사회의 주류(mainstream)로서 살아가도록 하기 위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동기 역시 이유와 같은 것이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유와 동기를 일치시키지 못한 채, 이러한 논의를 진행한다면, ‘세뱃돈을 받기 위해서 세배를 하는 어린아이’의 유치함을 재현하는 것이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